은행들이 다세대ㆍ빌라ㆍ연립주택ㆍ다가구 주택의 담보대출을 바짝 죄고 있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은행에서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 물건이 쏟아지자 서둘러 대출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출 위험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다.
조흥은행은 지난 21일 일선 점포 대출 담당자에게 이들 주택의 담보대출을 할 때 특별히 유의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공급과잉+경기침체,대출금 못갚아 경매처분 잇따라 조흥은행 여신기획부 이환석 차장은 “주차장설치 기준 강화조치를 앞두고 다세대ㆍ빌라ㆍ다가구 주택이 2002년 한해만 수도권과 서울지역에서 50만 가구가 지어져 공급과잉 후유증을 겪고 있다”며 “이들 주택의 가격이 하락하고 경매 물건도 급증해 연체와 부실채권이 속출할 것으로 우려돼 이같이 조치했다”고 말했다.
조흥은행에 따르면 2∼3년 전 당시 빌라ㆍ다세대주택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비율(LTV)이 감정가의 90%에 달했다.이러다보니 서민들은 이런 대출 여건을 활용해 적은 돈으로 내집을 많이 장만했다.
하지만 경기불황 여파로 대출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해 지난해 9월부터 경매에 부쳐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세대와 빌라들이 많이 들어선 곳은 수도권 서부지역(인천ㆍ부천ㆍ시흥ㆍ안산ㆍ광명),서울 강서지역(신월동 등)과 서초지역(방배ㆍ서초동) 일대 인 것으로 조사됐다.
李 차장은 “이번 지침은 전국 점포에 모두 내려보냈으나 이들 특정지역 대출담당자에게 대출할 때 각별히 주의하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조흥은행은 빌라나 다세대 주택을 대출할 때 담보가치만 따지지 말고 상환능력을 봐서 결정하도록 했다. 특히 일부 빌라 건축업자들이 대출을 많이 받아내기 위해 분양가를 뻥튀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대출서류를 보다 꼼꼼히 살펴보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일부 빌라깡 업자 농간도 대출 억제 이유조흥은행이 이처럼 서민주택 담보 대출에 대해 옥죄기에 나선 것은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일부 ‘빌라깡’ 업자들이 부도 위기에 처한 빌라사업자의 빌라를 대거 매입, 소액 세입자를 위장 전입시켜 낙찰금을 타내는 교묘한 수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주택이 경매에 부쳐지더라도 최우선 변제금(서울지역 보증금 4000만 원 이하 최우선변제금 1600만 원)규정이 있어 낙찰자는 소액 세입자에게 이를 우선 변제해줘야 한다. 깡업자들은 빌라사업자가 은행에서 꾼 대출을 안기 때문에 자신의 돈은 거의 들이지 않는다.
李차장은 “이럴 경우 대출금을 갚지 않아 경매에 부쳐지더라도 남는 게 없어 은행으로선 부실채권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조흥은행은 빌라 등의 담보대출비율은 아파트와 같이 적용(투기지역 10년 이하 40%)하고 있으나 오는 7월부터 대출금리를 아파트보다 0.3∼0.5%포인트 올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우리은행도 최근 빌라 등 공동주택에 대한 담보인정비율을 종전의 55%에서 50%로 낮췄고 담보대출 금리도 아파트와 일반 단독주택보다 0.1∼0.15%포인트 높게 책정했다.
신한은행은 이들 주택의 담보인정비율을 투기지역의 아파트에 적용되는 40%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고 대출금리도 아파트보다 0.3∼0.5%포인트 높게 받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기불황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다세대 등의 담보대출 연체이자가 급증, 부실채권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자 은행들이 발 빠르게 리스크 헷지에 나선 것 같다”며 “서민들이 대출을 받긴 더욱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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