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큰 형 정약전이 천주교도 탄압으로 말년을 보낸 흑산도 유배 생활을 그린 흑백영화 ‘자산어보’. 정치·사회·종교적인 격랑이 거셌던 19세기 조선 후기, 고단한 민초의 삶을 수묵화처럼 담았다.
세도정치의 학정이 세금 징수에 잘 나타나 있다. "작은 것까지 세금을 매긴다"며 어린 소나무를 파헤치는 아낙, 3년 전 죽은 아들에게도 나오는 세금을 못 견뎌 목을 매는 아버지, 남자에게 나오는 군포(군역을 면제하는 대신 매기는 세금) 때문에 자해하는 지아비.
영화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과도한 규제와 징수가 낳은 잔혹상을 전했다. 극한으로 몰린 민초들의 삶은 같은 세기말 동학농민운동의 씨앗이 됐다.
정치판 뒤흔드는 세금
이달 초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도 경제적 이슈의 정치적 휘발성을 보여줬다. 야당의 압승에 놀란 여당이 이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규제 완화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종부세가 일반화하고 징벌적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제가 강화되면서 위헌 논란에 휘말렸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이 종부세 위헌법률 심판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한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헌법은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59조)고 명시하고 있다. 세금에서 헌법과 같은 국세기본법과 지방세기본법은 '세법의 해석·적용에서는 과세의 형평과 당해 조항의 합목적성에 비추어 납세자의 재산권이 부당히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했다.
조세의 생명으로 '형평성'을 못박은 것이다. 법에 ‘형평’에 대한 해석이 없지만 국어사전은 ‘균형이 맞음. 또는 그런 상태’로 설명한다. ‘균형’을 찾아보면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다.
종부세가 얼마나, 어떻게 기울어진 걸까.종부세는 2005년 도입됐다. 종부세법은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부과해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재정의 균형발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1조 목적).
‘고액’의 기준이 제정 때 공시가격 9억원이었다가 2006년 1년 만에 6억원으로 조정됐다. 일부 위헌 결정 이후 2009년부터 9억원(1주택자)으로 정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동주택(아파트·다세대주택·연립주택) 기준으로 2006년 6억원 초과 비중이 1.7%였다. 9억원으로 오른 뒤 비중이 1% 밑으로 내려갔고 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16년 0.54%(6만5000가구)였다. 올해 9억원 초과는 3.7%(52만5000가구)다. 5년새 6배 늘었다. 서울에선 여섯 채 중 하나다.
종부세 대상 주택 6배 늘어
종부세 대상 주택 급증은 집값이 많이 오른 데다 정부가 2019년부터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2018년엔 시세 13억2000만원이 공시가격 9억원이었는데, 올해는 4000만원 내려간 12억8000만원이면 공시가 9억원이다. 현실화율이 90%로 올라가는 2027년엔 시세 10억원이면 종부세 대상이 된다. 과거엔 종부세 기준 금액에 못 미치던 집들이 대거 종부세 대상에 들게 되는 것이다. 올해 집값 기준으로 보더라도 2027년 공시가 9억원 초과가 지금보다 30만가구 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까지 집값 상승을 고려하면 종부세 대상 주택이 100만가구를 훌쩍 넘어설 것이다.
대상 주택이 늘면서 종부세 납부 인원도 급증했다. 2005년 첫해엔 3만6000여명이었다. 현 정부 이전까지 30만명을 밑돌다 지난해 66만7000명으로 급증해 처음 납세인원의 20배가량으로 늘었다. 올해엔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종부세 납부 인원이 100만명을 돌파하면 주택 소유자의 7% 정도를 차지한다. 2016년만 해도 2%였다. 종부세 납부자 대부분이 몰려있는 서울에선 올해 집을 가진 사람 4명 중 1명 꼴로 종부세를 낼 것 같다.
지난 4년 새 종부세가 집 있는 사람 중에서도 극소수만 내던 ‘부자세’에서 이젠 흔한 세금이 됐다. 2027년엔 ‘보편세’가 될 전망이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내는 세금을 일부 고액 부동산 자산가 세금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종부세는 대상이 넓어질 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무거워지고 있다. 집값이 올라서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집값이 변동 없어도 세금이 크게 늘고 있다.
종부세엔 3개의 ‘증폭기’가 마련돼있다. 시세를 공시가격으로 바꾸는 현실화율, 공시가격 중 세금 계산에 반영하는 비율인 공정시장가액비율, 마지막으로 세율. 2019년부터 현실화율과 공정시장가액비율이 올랐다. 2009년 이후 10년간 변함없던 세율이 2019년과 올해 두 차례 상향 조정됐다.
시세 20억원 주택에 대한 종부세가 2018년 115만원에서 올해 369만원으로 오른다. 2025년엔 677만원으로, 7년 전의 6배가 된다. 재산세를 합친 보유세의 시세 대비 실효세율이 2018년 0.27%에서 2025년 0.64%로 2배가량 오른다.
공시가 같아도 2주택자 세금이 2배
1주택자도 버거운 마당에 다주택자는 ‘곡소리’를 낼 것 같다. 종부세 납부 인원 중 다주택자가 60% 정도로 대부분이다. 현 정부 들어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에서 1주택자 세율은 0.5~2%에서 0.6~3%로 1.5배까지 올라갔다. 다주택자는 최고 6%로 1주택자의 2배 정도로 훨씬 더 높다.
원래 종부세가 다주택자 세 부담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종부세법 목적에서 말하는 ‘조세 부담의 형평성 제고’가 1주택자와 다주택자 간 격차를 염두에 뒀다. 기존 재산세가 누진세율 구조로, 가격 구간을 나눠 구간이 올라갈수록 세율이 높다. 가격이 같더라도 여러 채로 나누면 세금이 줄어든다. 공시가격 20억원 1채의 재산세가 418만원인데 10억원 2채가 354만원이다.
종부세는 재산세와 달리 ‘합산’ 과세 방식이다. 개인이 가진 주택 가격을 모두 합치면 세금 계산 금액인 과세표준이 올라가 세금이 늘어난다. 또 2009년부터 1주택자의 기본공제 금액을 3억원 더 늘려 다주택자 과세표준이 그만큼 더 많아지게 됐다.
다주택자는 1주택자보다 재산세가 적어도 종부세가 훨씬 더 많아 전체 보유세가 많아지게 된다.여기다 현 정부 들어 다주택자 중과로 세율도 큰 폭으로 차이 나면서 다주택자 종부세가 급등한다.
공시가 10억원씩 2주택자 보유세가 20억원 1주택자보다 다주택자 중과 이전엔 10% 정도 더 많았으나 올해는 각각 3421만원과 1512만원으로 1주택자의 2배가 넘는다. 서울 강북에 아파트 2채를 가진 김 모 씨는 “1주택자보다 많은 세금을 인정하더라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다주택자가 죄인 취급을 받고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라고 하소연한다.
공동상속 지분도 보유 주택으로 간주
종부세는 '인정'이 없는 세금이다. 다주택자 중과를 도입한 세금 중 가장 엄격하다. 현 정부 들어 2018년 양도세에 이어 지난해부터 취득세도 다주택자에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모든 주택을 주택 수 계산에 포함하지는 않는다.
수도권·지방광역시·세종시 이외의 3억원 이하(양도세)나 공시가격 1억원 이하(취득세)와 같은 저가주택, 1주택자가 집을 갈아타는 과정의 일시적 2주택 등은 뺀다. 공동으로 상속받은 주택의 경우 지분이 가장 크거나 최연장자인 상속인만 주택 수에 포함한다.
무주택자에게 먼저 주택을 공급하는 청약제도도 일정한 기준 이하의 저가·소형 주택, 공동상속 주택 지분 등은 주택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종부세는 이들 주택 모두 주택 수에 포함한다. 부부 공동소유 1주택을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1가구 1주택’으로 10여년간 인정하지 않다 올해부터 받아들여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종부세가 사방에서 형평성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세금 징수는 흔들리지 말아야 하니 이는 세금을 징수하면서도 어루만지고 돌보는 것이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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