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루. 합판 위에 고강도 수지를 올리고 원목 무늬 필름을 코팅해 '무늬만 원목'인 바닥재다. 가스쿡탑은 도시가스를 쓰는 주방 조리기구다. 아파트 견본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마감재다.
지난 4월 경기도 양주시 옥정지구에 분양한 분양가 3.3㎡당 1100만원의 공공분양 아파트에 설치된 기본품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아파트보다 4배 이상 비싸고 강남 역대 최고 분양가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3.3㎡당 5653만원)의 거실과 주방에서도 이 제품들을 볼 수 있다. 다른 마감재도 옥정 공공분양 단지와 별 차이가 없다.
74㎡(이하 전용면적) 기준층 기준으로 각각 3억원과 17억원이 두 아파트의 마감재 수준이 같은 셈이다. 사이버모델하우스를 둘러본 사람들 사이에서 "마감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대 이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건축비 상한 3.3㎡당 653만4000원
분양가 규제 때문이다. 옥정지구 공공분양 단지와 래미안원베일리 모두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는다. 감정평가한 땅값과 정부가 정한 기본형 건축비 범위 내에서 분양가를 책정해야 한다.
지난 3월 고시한 건축비 상한금액이 3.3㎡당 653만4000원이다. 건축비가 비슷해 분양가 차이는 결국 땅값 차이다. 건축비가 비슷하다 보니 자연히 마감재도 차별화되지 않는다. 두 단지의 마감재 비용이 모두 2500만원 정도다.
마감재 비용을 어떻게 알았나. 분양가상한제는 모집공고에 마이너스옵션 금액을 공개하게 돼 있다. 소비자가 마감재를 설치하지 않은 ‘누드’ 분양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마이너스옵션 품목과 금액을 제시한다.
주택형별 마이너스옵션 금액은 지역 등에 상관없이 거의 같다. 59㎡ 2000만원, 74㎡ 2500만원, 84㎡ 2900만원 선이다.
모집공고상 분양가는 기본품목을 설치한 가격이고 마이너스옵션을 선택하면 분양가에서 그만큼 빼주기 때문에 분양가가 내려가는 셈이다.
래미안원베일리에서 가장 작은 46㎡의 마이너스옵션 금액이 1600만원이다. 분양가가 9억500만원이어서 마이너스옵션을 선택하면 실제 분양가가 8억8900만원 정도다. 9억원 이하여서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중도금 대출 여부는 옵션 비용을 제외하고 모집공고상의 분양가를 기준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9억원 이하인 분양가에 추가품목을 선택하는 플러스옵션 비용을 합친 금액이 9억원이 넘더라도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마이너스옵션·플러스옵션 금액이 중도금 대출에 영향이 없지만 입주 후 취득세와 상관이 있다.
김종필 세무사는 “취득세는 실제 취득가격에 매기기 때문에 옵션 비용을 더하거나 뺀 금액이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마이너스옵션 외면
소비자 선택폭 확대라는 취지에서 마이너스옵션이 마련돼 있지만 실제로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12월 분양한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지구 힐스테이트리슈빌강일 809가구 중 마이너스옵션을 선택한 가구가 10가구 미만이다.
지난해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과천푸르지오오르투스(435가구)에선 단 한 가구만 선택했다. 기본 마감재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플러스옵션을 선택하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김정아 내외주건 상무는 “소비자들이 개별적으로 설치하면 비용이 훨씬 많이 들기 때문에 공동구매하고 시공사가 설치해주는 플러스옵션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기본품목 정도도 직접 개인이 설치하면 비용 부담이 크다. 마이너스옵션을 선택하면 플러스옵션으로 추가품목을 설치할 수 없는 점도 마이너스옵션 선택이 드문 이유다.
래미안원베일리 당첨자가 플러스옵션을 선택하는 데 최대 7000만원가량 들어간다. 74㎡에서 거실·침실 등의 강마루 대신 이탈리아산원목마루 1500만원, 독일 ALNO 주방가구 1620만원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플러스옵션 품목이 해외 명품 등이어서 액수가 크지만 거액인 분양가에 좀 더 들여서라도 고급스럽게 꾸미기 위해 많이 선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작권자(c)중앙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