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본지가 주최한 부동산정책포럼에서 조주현 건국대 명예교수가 사회를 보며 연신 ‘불확실’ ‘안갯속’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오랜 기간 부동산에 몸담아 온 노 교수도 머리를 흔들 만큼 요즘 주택시장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경제 못지않게 집값도 당초 예상과 전혀 딴판으로 움직이고 있다. 전망이 무색할 정도로 종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집값은 침체 우려를 비웃고 전례 없는 폭등세를 보였다.
반면 팬데믹이 수그러들자 예상 밖 급랭으로 분위기가 180도 달라지고 있다. 연이은 집값 배신의 계절을 맞고 있다.
어머니가 딸에게 15억 싸게 매도
시장 동향과 관련해 가장 많이 소개되는 게 실거래가다. 중개업소에 나온 호가 중심의 시세와 달리 실제로 거래된 가격이어서 체감하고 믿을 만한 신호로 여겨진다. 계약 이후 한 달 이내에 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하고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을 통해 공개돼 누구나 알 수 있다.
우리 아파트가 얼마에 팔렸는지 궁금해 간혹 쳐다보는 경우가 있는데 실거래가 하락세가 뚜렷한 요즘은 코를 박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 아파트 가격 하락세 등의 영향으로 주택가격전망지수도 사상 최저 수준까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2022년 9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택가격전망지수(67)는 9포인트나 급락해 8월(76)에 이어 두 달 연속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 치웠다. 사진은 이날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를 분석해 부동산정책포럼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점이 몰렸던 지난해 하반기 최고가를 찍은 집 중 43%가 하락했고 2%가 고점을 유지했다. 나머지 55%는 거래가 없었다.
김 위원은 “지난 5년(2017~2021년)간 상승 폭이 큰 지역에서 하락 거래가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 투명성을 목적으로 공개되는 실거래가가 되레 착시를 낳고 불안을 키우고 있다. 시장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신호'가 아니라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소음'인 셈이다.
시세와 상관없이 개별 사정에 따른 매도자와 매수자 간 직거래에서 흔하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직거래와 중개업소를 통한 중개거래로 구분해 공개하고 있다. 실거래가공개시스템을 분석해보면 서울 아파트 거래에서 직거래가 8건 중 하나꼴인 13%를 차지하고 있다.
이달 초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마곡수명산파크 84㎡(이하 전용면적)가 7억원에 직거래했다. 두 달 전 비슷한 층 중개거래 가격이 9억9000만원이었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7억원 거래 매도자가 지방에 거주하는 80대이고 매수자가 서울에 사는 20대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저가 직거래에는 가족 등 특수관계이 자주 눈에 뜨인다. 증여세 등 세금을 아끼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입주했고 중개업소들이 시세를 30억원 이상으로 보는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개포 84㎡가 지난달 반값인 15억원에 직거래했다. 어머니가 딸에게 저가 매도한 것으로 업계는 본다.
가족 간 직거래와 실거래 구분을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소규모 단지에서 지난 6월에 3건의 거래가 있었다. 거래가격이 101㎡ 9억3000만원, 84㎡ 7억8000만원인데 가장 작은 70㎡가 101㎡의 2배에 가까운 19억원이었다. 101㎡와 84㎡가 직거래이고, 70㎡가 중개거래다.
직거래가 조합에서 새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하는 집을 매입한 현금청산이었다. 현금청산 금액이 과거 사업 단계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낮다. 70㎡는 새 아파트 분양자격이 있는 주택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직거래로 보이는 실거래가 급락이 있었지만 드물었다. 금융위기 전 14억원까지 치솟았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84㎡가 9억원대까지 내린 2010년에 3분의 1토막에도 못 미치는 2억3500만원이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올랐다. 9억원 정도에서 실거래가 신고가 이뤄지던 2013년 5억원 거래가격이 나왔다.
당시는 직거래·중개거래 구분을 하지 않던 때여서 직거래 여부를 알 수 없지만 확인 결과 증여와 부자 간 거래였다. 증여가 실거래가 신고 대상이 아닌데 잘못 신고한 것 같다. 김종필 세무사는 "금융위기 때보다 시장과 세제가 복잡해져서 직거래가 늘어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직거래는 집을 팔아서 돈을 남기겠다는 목적보다 다른 이유가 많은 당사자 간 거래여서 저가 거래일 확률이 높다.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어서 걸러내고 실거래가를 봐야 한다.
하지만 신고된 실거래가로는 거래 이유와 매도·매수인 관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당국에서 예외적인 사정의 실거래가를 제외하고 공개하는 게 불가능하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면적·날짜 등 신고 오류가 있는 것만 뺀다"고 말했다.
중개료 아끼려 직거래 늘어
직거래 가격이 모두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라는 말이 아니다. 특수관계인이 아니고 서로 모르는 개인 간 거래에서도 직거래 가격이 느는 추세다. 중개보수를 아끼기 위한 것이다. 서울에서 매매가격이 15억원이 넘으면 중개보수가 1000만원이 넘는다.
저가 급매물을 감시하는 입주민의 눈을 피한 직거래도 많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시세보다 싼 급매물을 올리면 다른 주인들의 항의가 빗발쳐 드러내 놓고 중개하지 못한다”고 귀띔했다.
뜬금없이 수억원 뚝 떨어진 옆집 실거래가가 대개 비정상적인 거래라는 데에 안도감이 들더라도 지금부터 정말로 집값을 걱정해야 한다. 실거래가 착시를 고려해도 집값은 내리고 있다. 아파트 실거래가 통계가 지난해 11월 하락세로 돌아선 뒤 한국부동산원이 3개월 뒤인 올 2월부터, KB국민은행도 7월부터 따랐다.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파도가 잠깐 지나가지 않고 앞으로 더욱 높아지고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와 전문가들도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금융위기 때는 3고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터널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들어갈수록 끝이 더 멀어지는 기분이다.
경제가 암울한 가운데 다소 내렸다 하더라도 소득 대비 집값이 여전히 높다. 집값 등락 균형추 구실을 하는 게 소득이다. 장기적으로 집값이 소득과 같이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현재까지 상승률이 80% 정도다.
같은 기간 소득 상승률의 4배다. 연간 소득 대비 서울 집값 배수인 PIR가 2015년까지 10 이하였다가 지난해 말 19까지 치솟은 뒤 다소 꺾여 지금은 18 아래로 내려왔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10~12 정도로 떨어져야 정상”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집값이 40% 정도 내려가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동안 소득 증가를 고려하면 2019년 이전 집값 수준이 돼야 한다.
잠 못 이루는 71만 '영끌족'
문제는 대응이다. 집값이 2019년 이전으로 내려간다면 2019년 이후 집을 산 서울 50만 명, 전국 350만 명이 밤잠을 설칠 것이다. 이중 ‘영끌’한 30대가 각각 11만 명, 71만 명이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이며 정상화하고 있다”는 한가한 말로 이들의 속을 뒤집고 있다.
원 장관도 “현재 너무 높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의 하향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며 “시장은 (적정) 가격을 발견하는 자기 정화 기능이 있다”고 했다. 아픈 사람에게 “과로해서 몸이 안 좋은 게 당연하다. 며칠 참으면 자연히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간 이혼감이다.
하강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경착륙을 막고 연착륙을 유도해 충격을 줄이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가격이 내려가는 중에도 집을 사려는 수요가 있다”며 “이들의 시장 진입을 막는 세제·대출 등 높은 규제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의 '자기 정화 기능'을 약화한 과도한 규제도 서둘러 풀어야 한다. 추락하는 데 날개가 없다면 낙하산을 달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뒤늦게 집을 사서 마음 졸이는 사람은 지나친 공포를 이겨내고 버텨야 한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부동산학)는 “등락을 거듭하면서 자산 가치는 결국 우상향한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도 “직접 거주하는 실거주 1주택자라면 잘 버텨서 이겨낼 때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기 전 고점 때 상투를 잡은 사람도 버티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2006년 11~12월 6명이 잠실주공5단지 76㎡를 13억원대에 상투를 잡았다. 한 명은 4년 뒤 3억 가까이 손해 보고 손절했고, 다른 사람은 6년을 견디다 버티지 못하고 4억원 낮춰 팔았다.
13년을 갖고 있다가 2019년 5억원 더 받고 판 사람도 있다. 나머지 4명은 아직도 갖고 있다. 올해 거래된 실거래가가 27억원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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