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경매법정. 서대문구 홍은동의 A다세대 주택 전용면적 41㎡ 매물이 경매에 나왔지만, 응찰자는 한 명도 없었다. 13번째 유찰이다. 경매 최저가가 감정가(2억5100만원)의 5.5%인 1379만원대로 곤두박질쳤는데도 사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선순위 세입자의 보증금 2억1500만원을 매수자가 인수해야 하는 조건이지만, 이를 고려해도 감정가에 못 미친다. 같은 날 진행된 은평구 신사동 B빌라(전용 40㎡) 물건 역시 감정가의 8.6%인 2500만원대에 경매가 진행됐으나 12번째 유찰됐다.
경매시장에서 ‘빌라’(다세대·연립) 외면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찾는 사람이 부쩍 줄면서 10회 넘게 유찰되는 사례도 속출한다.
5일 법원경매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빌라 낙찰률(경매 건수 대비 낙찰 건수 비율)은 8.6%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1년 1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10건 중 9건 넘게 유찰됐다는 의미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경매로 나온 빌라 27채 중 25채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낙찰률은 1년 전 22.2%, 올해 1월엔 14.1%였으나 지난 3월부터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5월 3.3명이던 평균 응찰자 수는 지난달 2.4명대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 역시 97.6%에서 83.2%로 떨어졌다. 수요가 뜸하고 유찰되는 물건이 늘다 보니 빌라 물건은 쌓이는 추세다. 지난달 서울에서 진행된 빌라 경매 건수는 888건으로 1년 전(424건)의 두 배가 됐다.
빌라 경매시장이 위축된 것은 무엇보다 ‘깡통 전세’ 우려가 커진 탓이다. 최근 주택시장 침체로 매매가격이 전세 보증금 아래로 떨어진 빌라가 많다. 그런데 경매시장에선 선순위 세입자가 있는 집은 낙찰받은 뒤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낙찰금액이 싸더라도 선순위 세입자의 보증금이 감정가에 근접한 수준이면 낙찰자가 손해 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빌라 시세가 감정가 밑으로 내려간 경우도 적지 않다”며 “선순위 보증금을 고려하면 시세보다 비싸게 사는 꼴이 될 수 있어 사람들이 입찰에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잇단 전세 사기 사건으로 빌라 기피 현상이 심화한 것도 한몫했다. 강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빌라의 주요 수요층은 신혼부부나 청년층인데, 지난해부터 전세 사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다 보니 매매든, 전세든 빌라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시장에서도 빌라는 찬밥 신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4월 서울 빌라 매매거래량은 686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2951건)보다 47% 줄었다.
전망도 암울하다.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로 세입자가 빌라를 꺼리면서 투자자의 수요도 급감하는 데다, 올해 하반기엔 빌라 경매 물건이 쏟아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정부가 6개월간 유예시킨 전세 사기 피해 매물의 경매가 올 10월부터 쏟아지면 시장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내년까지 빌라 경매 물건이 늘고 낙찰률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c)중앙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