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국정철학의 기반은 ‘법과 원칙’이다. 그러나 담합을 상습적으로 저지른 건설사들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질적으로 담합에 따른 공공입찰 참여 제한 제재를 받고 있는 건설사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번 8·15특사에서 입찰 제한 대상 건설사에 대한 사면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는 물론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주요 부처가 ‘건설업계 구하기’에 나서는 모습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00년 이후 3차례 입찰 제한 사면을 받고도 담합 고질병을 고치지 못한 건설업계에 정부가 또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희망 부풀어 있는 건설업계=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가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위한 사면 필요성을 언급했다. SK 최태원 회장 등 기업인 사면이 이슈로 떠올랐지만 건설업계 역시 공공입찰 참여 제한 제재에 대한 사면을 기대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2013년 이후 4대강 담합 등 대규모 입찰담합이 적발되면서 공정위로부터 줄줄이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30대 대형 건설사 중 담합에 적발되지 않은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다. 해당 건설사들은 과징금은 내겠지만 담합에 따른 공공입찰 참여 제한 처분은 과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국가계약법은 담합을 저지른 건설사에 대해 최장 2년에 걸쳐 공공입찰 참여를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건설업계의 희망대로 분위기는 흘러가고 있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최근 조달청에 공공입찰 제한 건설사 현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9일 “이번 대사면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차원이 큰 만큼 위기에 빠진 건설업계가 포함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피해 보는 건설사 없는데 사면 검토?=조달청에 따르면 이날 현재 실제 공공입찰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는 건설사는 한 곳도 없다. 현재 78개 건설사가 담합 등으로 인해 부정당업자로 지정돼 공공입찰 제한 처분을 받은 상태지만, 이들 건설사 모두 법원에 효력중지 가처분 신청 등 관련 소송을 통해 ‘시간끌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담합으로 처벌된 건설사들이 실제 공공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은 경우도 거의 없다. 정부는 2012년 1월 실시한 특별사면에서 조달청으로부터 부정당업자 처분을 받아 공공입찰이 제한됐던 68개 건설사에 대한 제재를 풀어줬다. 2011년 12월 받았던 처분을 한 달 만에 사면해주면서 건설사들의 실질적 피해는 없었다. 조달청 관계자는 “2012년 사면 이후에도 부정당업자 처분을 받은 건설사 중 실제 입찰제한 조치를 당한 건설사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는 향후 있을지 모를 건설사 불이익을 위해 사면을 검토하는 상황인 셈이다.
◇관련 부처도 사면 준비 중?=공정위는 8·15 사면을 앞두고 입찰 담합 사건 ‘털어내기’에 한창이다. 이번 달에만 공정위가 결론지은 입찰담합 사건은 무려 12건이나 된다. 지난 1분기에 처리한 입찰담합 사건이 6건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공정위가 얼마나 속도전을 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위에서부터 입찰담합 사건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라는 지침이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입찰담합 사건 처리에 묶여 다른 사건 처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입찰참가 제한 제도의 합리적 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입찰제한 조치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 등 여당 의원 10명은 지난 6월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입찰 참가자격 제한 사유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나면 제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담합행위를 한 지 5년이 지나면 입찰 참가 제한을 할 수 없도록 공소시효를 두자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지난 1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밝힌 ‘입찰참가제한 제도 제척기간 5년 도입 추진’과 동일한 내용이다.
◇3번 속은 정부, 이번에도?=이런 정부의 ‘건설업계 구하기’ 모습은 낯설지 않다. 정부는 2000년과 2006년, 2012년 3차례 특별사면 명목으로 건설사 입찰제한 조치를 풀어줬다. 그때마다 건설사들은 담합 근절을 약속했지만 담합은 오히려 늘어났다. 일례로 2006년 8·15특사로 입찰제한 해제를 받은 건설사들은 2008년 이후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또다시 담합을 저질렀다.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공공건설 입찰담합 과징금은 8348억원(자진신고감경제도에 따른 과징금 감면금액 미포함)인 반면, 이로 인한 예산 낭비액은 1조8000억원이나 됐다. 담합을 통해 건설사들이 얻은 부당이득이 과징금보다 배 이상 많은 셈이다.
경실련 최승섭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장은 “음주운전도 2회 이상 적발되면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데 건설사들은 이미 담합으로 삼진아웃을 당한 상황”이라며 “이번에 건설사들이 또다시 사면된다면 담합 근절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입찰 제한은 이중적 제재로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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